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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뽀빠이 이상용 별세 왜 병원 다녀오다 쓰러졌나…그가 끝까지 지킨 약속…잊지 못할 방송과 선행 기록 우정의 무대부터 심장병 어린이 돕기까지

by ★☆♠♥ 202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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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상용 씨가 2025년 5월 9일, 병원 진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쓰러져 향년 81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뽀빠이 아저씨’로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는 연예계뿐 아니라 복지,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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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씨의 생애와 방송 활동

1944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난 이상용 씨는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CBS 기독교방송 MC로 방송계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이후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에서 활약하며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KBS와 MBC를 오가며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1975년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에서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어린이들 사이에서 ‘뽀빠이 아저씨’로 불리며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뽀빠이'라는 별명은 그에게 하나의 브랜드처럼 작용했고, 이후에도 많은 방송에서 그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군 위문 프로그램인 MBC <우정의 무대>를 맡으며 전국의 군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습니다. ‘충성!’, ‘필승!’ 등의 구호와 함께 군 장병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안겨준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수많은 병사들의 팬레터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는 또한 KBS <6시 내고향>, <아침마당> 등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지역과 일상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했고, 말년까지도 종종 강연이나 유튜브 방송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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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 아저씨'로 유명한 방송인 이상용이 별세했다. 향년 81세./사진=TV조선 '기적의 습관''

그가 남긴 유산과 선행 활동

이상용 씨는 단순히 방송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활동에도 앞장섰습니다. 특히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은 그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활동 중 하나로, 방송 수익 일부와 사비를 기부하며 지속적인 후원을 해왔습니다.

그는 어린이 복지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병원비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모금 방송과 현장 기부를 수차례 진행했습니다. 또한 복지단체와 연계해 복지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거나, 복지사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이론적으로도 사회복지에 대한 지식과 실천력을 다졌고, 실제로도 수차례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 대중 앞에서 복지정책과 소외계층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1995년에는 서울 강서구의 한 소외지역 초등학교에 전교생에게 책가방과 학용품을 기증했고, 해당 지역에서 직접 사인회를 열어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지역 언론에 소개되어 큰 감동을 준 바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지방 소년소녀가장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무료 특강 및 장학금 지원 사업에도 참여했으며, 강연 후에는 항상 ‘자신을 바꿔야 세상이 변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청중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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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상용씨. 유튜브 캡처

사회적 영향과 후배들에 대한 귀감

이상용 씨는 방송계에서도 ‘후배들에게 엄하지만 따뜻한 선배’로 유명했습니다. KBS와 MBC 공채 후배들에게 늘 "인기는 잠깐, 사람은 오래 간다"고 말하며 인성 중심의 방송 태도를 강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방송 출연보다도 사람 간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겼으며, 실제로 자신의 방송에서 함께했던 스태프와 진행자들과는 20년 넘게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자신이 올라선 자리는 자기 혼자 만든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방송계 명언처럼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여러 방송 후배들의 데뷔 무대를 열어주었고, 강연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지역방송이나 케이블 채널에서 활약하는 신인 MC들에게 직접 연락해 조언해주고 출연을 도와주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 있고 싶다”는 말을 자주 남기며 소외된 무대, 지방 행사, 군 위문 등 대형 방송이 아닌 작지만 의미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빈소 및 애도 소식

2025년 5월 9일 낮 12시 45분경,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이상용 씨는 귀가 중 갑작스럽게 쓰러졌고, 곧바로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심정지로 끝내 소생하지 못했습니다. 사망 당시 가족과 지인이 곁에 있었으며, 평소 지병이 없던 터라 가족들도 충격이 큰 상황입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며, 조문은 5월 10일부터 가능하다고 전해졌습니다. 발인은 5월 12일 예정이며, 장지는 고인이 평소 고향과 같은 마음을 품었다고 말하던 충청남도 서천 선영입니다.

오랜 방송 동료였던 엄영수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리가 많이 불편하셔서 재작년부터 외출을 거의 못하셨다"며 "마지막 방송 출연에서도 늘 대중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하셨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에 많은 방송인들과 시청자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우리의 뽀빠이 아저씨,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용 씨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따뜻한 유산과 긍정적인 메시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삶을 기억하며, 각자 삶 속에서 작은 선행을 실천해 보는 것도 그에 대한 가장 좋은 추모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직접 적용해보세요. 이상용 씨가 실천했던 나눔과 배려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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